Hera님

어둡고 자학적인 주인공의 심리묘사 때문에 정주행하는 동안 같이 우울했다. 너무 소심하고 피해의식도 심하고 삶의 의지도 없었던 주인공이 가상세계를 통해 새로운 자아로 위로받고 온라인 친구인맥으로 정서적 유대를 쌓고, 현실세계에서 친구들 사귀면서 왕따를 극복하는 내용.

보통은 주인공이 선이고 존재감 강한 인물을 악으로 그려넣는데 장노란응 명백한 악역이라기 보단, 현실에 있을법한, 걔도 한낱 중3짜리 사춘기 아이라는 사실에 대입하면 절대악이라고 볼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선이거나 절대악일 수 없다. 전형적인 동화적 작법으로 장노란이 참회하거나 '모두는 친구'가 되지 않아서 현실적이었고, 특히 이백합이 마음에 들었다.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자 모범생인 이백합을 선역으로 묘사한게 아니라 기어오른다 싶으면 쳐내면서, 왜 나를 모두가 좋아해주지 않는걸까라고 생각하며, 편한 학교생활을 위해 장노란과 맞장구 쳐주며 어울리는 그 나름의 살아가는 방법들. 장노란을 제외하고는 이태양이 알고보면 친구를 동정으로 대했다든가 말 틱틱하고 예쁜 유리가 알고보니 미용에 노력하고 천성이 나쁘지 않은거, 재민이도 여자밝히지만 왕따당하는 친구에게 말걸면서도 잘나가고 싶고 인사받는 선배노릇에 대한 선망으로 일진무리에 섞이는 것도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면서 있을법한 현실을 담았다.
재희의 서사인 남고딩들 사이의 일진내 서열관계도 [말죽거리 잔혹사]보다 현실적이었고,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대사가 팔딱팔딱 생생했다. 작가가 평소 사람들의 발화방식을 주의깊게 관찰한것으로 보인다.
웹여장남이나 온라인만남으로 변태 아동성애자 만나는 것, 학대하는 부모 등 10대가 접할 가능성이 있는 등장인물도 자연스러웠다.

학대에 대해서는 학대가정 아동들이 어떤생각을 할까에 대해 상세한 심리묘사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의 학대행위가 시작하자 옷장에 숨어 바지에 지리고 빠는 장면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생부의 불륜을 알게된 후 악마가 아니라 사람으로 인식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건 손쉽게 처리시킨 감이 없지 않아있는데 그렇다고 통쾌함주려고 여중생이 어떻게해도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엄마의 이혼을 추진시킬 시킬 여건이 아니기 때문에 수긍했다.
백합아빠도 가부장적이고 자식을 대리 자아실현시키는 인형취급을하거나, 백합엄마는 자신이 살아온 코르셋 그대로를 물려주는 가정이었다.

학대아동이 관심을 줘야하는 부분은 생리대 살돈이 없어 아빠한테 생일선물은 커녕 생일을 이유로 어렵게 생리대 살 돈달라고하는 장면이나 급식비 면제 받으려고 선생님께 가난을 알려야하는 장면이었다. 아동복지만큼은 보편적 복지를 해야하는게 남들과 동류의식이 강하고 준거집단에 끼지 않으면 배척하려는 서열의식이 혼재하는시기라 도태되기 쉬운 극빈층은 쉽게 놀림감이 되기 쉽고 경제격차가 곧 서열최하층이 되면서 유물리적가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미래는 기본적인 생활양식도 바쁜어머니와 교육에 무관심한 아버지의 방치로 제대로 습득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중하나가 학교다녀와서 손씻는걸 중3때 배운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보통 손씻기가 아니라 샤워를 하는데 그럼 애가 평소에 제대로 목욕을 했을지 의문이다. 몸냄새가 나면 무조건 배제대상이다. 옳고그름을 떠나 본능적인 거부감과 결부되기에 불결하다고 피하는 또래들에게 화합을 강요할 수 없다. 또래사이에 배척되지 않으면서 쾌적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동에게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덧붙여 성교육도 정자난자 결합과 낙태방지를 성교육이랍시고하는데 2차 성징과 초경시 대처방법에 대하여 아동 성교육도서가 나와있다. 난 부모님이 직접해주지 않았지만 책을통해 미리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쯤에 부모가 내용을 먼저 읽어본후 선별해 자녀에게 탐독시키면 좋다.
 
이 만화는 한국사회에서 숨쉬듯이 일어나는 얼굴평가 겸 인사치레가 수도 없이 나온다. '많이 예뻐졌네', '얼굴 왜그래'. 겨우 열여섯짜리 애한테도 다이어트니 뭐니 강박에 씌여있고, 다리 굵기로 놀리며 주인공을 비롯한 여자들은 남의 무례한 외모지적질에 죄책감을 가진다. 중딩커플에게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는 송재민이나, 밴드부에 놀러온 백합에게 '비싸게 굴만 하네요'라는 타인을 쉽게 평가하려드는 멸시적 언사 등 10대때부터 여혐사회에 노출되는 상황을 딱히 인물을 악인처럼 그린게 아니라 배경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은 것도 의미심장했다. 보이는 사람만 노골적으로 보이는 여혐에 분노하는 것도 현실.

 어린친구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모든 친구들이 널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 친구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등 잘못한것 없는데도 트집잡는 인간들에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하여 조언을 해주는 것도 적절했다. 그게 만능은 아니지만 아는것만으로도 감정소모와 심적괴로움을 덜어줄 수 있을 처방전이다.

미래가 인터넷에 소설을 쓰면서 여러가지 조언을 받는데 타겟층에 적합한 글을 쓸것, 사건을 중심으로 갈등을 만들고 전개할 것, 트리트먼트를 구상하고 시작할 것 등등 소설만들기에 기본중의 기본을 쉽게 설명했고, 주인공이 유리면 모를까 책좋아하는 설정의 미래가 플롯구성에 관한글을 안읽었다는게 좀 수긍이 가질 않지만 뭐... 진재현이 다른 필명으로 다양한 장르에 글쓰거나, 작품 데뷔가 끝이 아니라는 건 다 아는 얘기지만 쉽게 간과하곤한다.


2000년대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중에 하나로서 아이돌팬의 사탕선물, 투투, 싸이월드, 메신저(난 지니랑 타키썼음), 네이버붐, 코스프레, mr.k, 노란국물(본사람은 영웅담 취급), 바짝 줄인 교복, 비기알 등 극중 게임을 제외한 모든것들에 공감할 수 있었다. 와레즈는 이용해봤지만 자기도 웹툰쓰면서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생각과 미성년이 성인물에 접속하는 장면이나 야한거 좋아한다는 대사들은 성인캐라면 상관없지만 웹툰 심의로 괜찮은가 갸우뚱했다.

웹툰 백만년만에 보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주 사용층은 10대가 압도적이고 2030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용소감을 피력하기까지하는 몰입 주사용층은 10대가 다수로 보인다. 해당 만화 베스트만 봤는데 인터넷 댓글매너는 현재의 20~50세대보다 훨씬 예의바르다. 요즘 포털 메인 댓글수준이랑 다르게 청정해서 좋았다. 가끔 왕따였는데 이 만화를 보고 좋은 자극을 받았다는 사연이나 왕따였는데 주인공을 보며 공감한다는 글도 꽤 있었다.

단점이 있다면 작화가 너무 낙서같고 단순해서 영화화라는 궁금증 때문에 본게 아니라면 작화보고 포기했을 듯.

만화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게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였다. 만화는 이해를 돕기위해 상당부분 나레이션으로 인물묘사와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했는데 그렇게 설명적이게 되면 생각할줄아는 관객들은  생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나레이션으로 극이 시시해지고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현실은 무슨생각으로 행동하는지 마음의 소리 따윈 나오지 않기 때문에. 톤은 따뜻하되 과하게 설명적이지 않고, 특히 게임cg가 싼티나지 않아야한다. 게임장면 한답시고 과장하고 요란 떨면 바로 3류됨. 학대장면 넣어 신파조로 감정 쥐어짜지 않고 감성적으로 다가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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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a님


유명한 작품이라 많은 기대를 하고 봤는데 실망스럽다. [너의 이름은.]과 별반 다르지 않고 학생시대로 세계관은 한정돼있다. 아 물론 작화는 좋았다. 게다가 등장하는 여자캐릭터는 고전적인 여성상에 갇혀있었다. 절친이면서 편지상에서 경어를 쓰고, 고백하려 하면서도 남주의 다정함-어떻게 보면 어장관리-에 자기한테 다정하지 말라고 몸부림치는거나, 극도의 수줍음. 전형적인 수동적인 여성캐의 한계를 이곳에서도 답습할 뿐이었다.

1부 벚꽃이야기
그거 알아?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cm
겨우 13살짜리 중1이 겨울날 어렵게 만나 하루밤 지새우는 이야기. 10년전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편지로 교류하는것부터 일부러 아날로그화하고싶었는가 싶었는데 내내 기차가 연착하고 기다리고, 기다리지말라고 되뇌이고. 문자도 톡도 안되는 상태라니. 1990년대에 삐삐가 나왔는데 어른의 감성을 위해 문명의 이기를 배제해버려 그게 애틋하고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미련하고 답답했다. 도치키로 전학간 아카리와 카고시마로 전학갈 타카키가 하필 저녁약속으로 만나는 것도 굳이? 싶고 시간이 늦어서 기차가 부모님의 걱정하나 없이 지들끼리 러브스토리 찍고 자빠진것도 우등생인척하는 주인공 캐릭터적으로 이해 안갔다. 게다가 남주의 우울함에 같이 우울함이 전염되는듯했다. 편지 허공에 날아가 버릴때 그 소중한 편지라면서 덜렁거리고 다닐때부터 불길한 징조이긴했지만 덧없이 날아갈때 감독이 관객 빡치게 작정하려나 싶었고 극의 우울감을 한층 더했다.열차안의 풍경은 활기나 따스함 보다 스산함과 적막이 흐르는 마치 [은하철도999]에서 기이한 열차의 이미지처럼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 애초에 청춘의 상징인 여름도, 새학기의 상징인 벚꽃이 아닌 시점부터 감독의 의도라고 봐야.
게다가 중딩 타카키 목소리가 변성기쯤이라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듣기 싫을만큼 극불호였다.

2부 코스모너트
카고시마에 전학가서 남주 타카키를 짝사랑하는 여주스미다 카나에가 등장한다. 타카키는 도쿄에서 전학온 세련된 남자를, 카나에는 도시남 타카키를 좋아한다. 하교할 때 같이 오토바이 타는 사이로 여친남친으로 오해받으면서도 스미다한테 같이가자고 하는데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친절함에 스미다는 어장에 갇혀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지하철이 아닌 오토바이라는 시골감성과 자연적인 풍광에 동화되는 것도 1편에 비해 온기는 더했을지언정 시골의 정감이라기 보단 시골의 적막감이 더 들었다. 까맣게 해진 풍경 너머를 자주 보이고 어둠속에서 인물이나 사물을 비추는 장면이 유독 많은건 보통 어두울땐 가로수로 장면에 조명을 켜는것과 청춘의 밝음이나 싱그러움이 소구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로 상담조차 채광이 밝게 드리워지는게 아니라 그늘지고 어두운 저편에서 파도도 유유자적하고 풍요로운게 아니라 거칠고 거세다. 우울한 짝사랑에 용기를 내 고백하려던 것을 삼키고 돌아선다. 중간에 어두운 밤에 보라빛 물감을 섞어놓은듯한 별빛 풍경과 나스다에서 발사하는 시속 5킬로짜리 발사장면이 타카키와 함께 본게 최고의 하이라이트지만 첫사랑의 두근거림, 사람의 마음을 알고 성장하는게 아니라 단념하는 감정선은 같은 얘기를 두고 어떻게 소구하느냐가 작품전체를 관통한다. 스미다가 고백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도 수동적인 캐릭터 감정선의 한계였지만, 그때 터지는 발사 타이밍으로 상황을 먹어버리는 것도 일차원적이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이 봐왔던 닳고닳은 이야기에 유려한 작화로 덮어쓰기했을 뿐. 어쩌면 [너의 이름은.]에서 보여줬던 풍경에서 천체와 학교, 벚꽃, 기차 몇가지 키워드의 배열을 거듭한 자가복제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이부분에서이다.

3화 초속 5cm
다시 첫시작 4월의 상징. 벚꽃철 그 찰나의 시기로 시작한다. 타카키는 프로그래머가 됐고 아카리는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됐다. 10대때부터 우울했던 타카키는 성인이된 현시점에서는 더욱 무기력하고 낙담에 빠져있었다. 원래부터 캐릭터자체가 우울감은 있었지만 강박적이고 의무적인 일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게 회사원이 되면 다그런거 아니야, 그나이되면 다그런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1,2부를 통해 타카키의 학창시절이 어땠는지 알고 있다. 그는 한번도 활기차게 웃어본적 없다. 희로애락중에 락만있는 캐릭터다. 아카리는 평범하게 살아가며 결혼약속하고 문득 타카키에 연락을 취하지만 타카키는 알 수 없는 매너리즘에 자신을 더욱 함몰시키면서 회사도 관둔다.
뚜렷한 이유없는 회피적 우울감 속에 거지같은 일본어 보컬이 등장해 아카리와 타카키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찾고 있다는 가사로 포장하는데 글쎄 아카리는 현재를 살고 타카키는 과거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길가다 우연히 마주쳐 돌아보는 순간 아카리도 그래주길 바란채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지만 아카리는 없었다. 첫사랑과 안녕한 것이다.

번역
아주 훌륭했다. 서정적인 문체로 자연스러웠다. 다만 다른 작품은 번역 누가했는지 나오던데 올레번역 누가 했는지 안나와서 알 수 없었던게 아쉬울 뿐.

연출
연기나 작중 연출이 우울함을 배가시키고 음향은 한적함을, 음악은 서정적인척하라고 이부분에서 감동을 느끼라고 종용하는 것같이 느껴질정도로 감정적인 연출이 난무해 한국신파 뺨쳤다. 한국 신파감성이 애니로 나오면 딱 [초속5cm]라고 생각이 들정도다. 서사로서는 상술했다시피 특별한게 없었고 연출이 감정적 과장일변이라 보기 힘들었다. 자가복제적인 면도 그렇고 신카이 감독작품에 대한 기대가 죄다 거품임을 매작품 거듭 실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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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a님

서사
별거 없다. 자신이 왕따시키고 괴롭혔던 아이와 친구가 되는 것. 그 왕따시킨 아이가 청각장애인이었던 것. 로맨스로 가나했더니 우정으로 마무리. 이게 현실적으로 봤을때 자신을 왕따시킨 주동자와 다시 얽히고 친구가 되고 싶을까를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판타지. 설상가상으로 쇼야도 아니고 쇼코 측에서 고백을 한다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쇼야가 확실한 주동자이다 보니 다른 주축들은 책임을 쇼야에 전부 독박씌우고 죄책감으로 해방된 동시에 왕따 공백을 쇼야로 이어간 건 정말 있을법한 일이라 좀 아찔하다.

캐릭터
쇼야는 개과천선하긴했다만 쇼야처럼 절절히 반성하는 가해자도 적고 95퍼는 그냥 별 죄의식 없이 지나치지 않을까. 뭐 만화니까 성격 좋고 공익 목적으로는 더없이 적절한 캐릭터 설정이지만.
쇼코의 경우 일본만화 특유의 비현실적 여성화 가령 다리를 꼬며 말한다든가 사람 부를 때도 부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작게해서 찌른다든가 하는 것+전형적인 성자의 모습을한 피해자+천사표 장애인. 이렇게까지 전형적인 캐릭터를 이중삼중 겹쳐놓으니 완전무결한 피해자 성녀가 돼버렸다. 아무래도 약자니까 악한짓하는 캐릭은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우에노같이 못된 애한테 맞받아치는 패기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자기를 막대한 사람에게 이유없이 사과하고, 제대로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친구라고 감싸주고, 다리위에서 카와이가 우에노 데려와서 쇼야가 하나씩 니가 잘못했다고 하던 대사들은 정작 쇼코가 해야할 대사였다. 피해자로서 유일하게 가해자의 잘못을 이르짚어줄 갈등의 절정을 워낙 말못하게 바보같이 착한 임물로 그리다보니 무기능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귀싸대기 후려갈기고 자기딸 막대하는 딸동창에 패주는 쇼코 엄마가 피해자 이미지를 벗어나서 숨통이 트였고 통쾌했다. 유즈루도 성별파괴하는 캐릭터라 그럭저럭 괜찮았고.
마리이&마리아 아빠는 흑인인데 이따금씩 일본매체에 나오는 외국인이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나쁘게 보면 양념에 불과하긴하지만 그래도 가족적 일원으로 비춰지는 느낌이라 코피노며 국제결혼 일절 매체에 등장하지 않는 한국과는 다른 양상.
대놓고 악인이었던 우에노는 원래 구제불능이지만 자긴 착한척하다가 수틀릴 때 얘가 왕따시켰다고 나발불던 카와이가 현실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교묘한 소시오패스라 더 싫었다.

성우
전체적으로 무난했는데 여주 성우가 성우라함은 발음 끝내주기로 공인인증된 직업인데 캐릭을 위해 엉터리 발음과 장애인연기를 했을거라 생각하니 직업정신을 곱씹으며 봤다. 남주 이리노 미유는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주연작 처음 본듯. 인상적인 목소리는 나가츠카역의 오노 켄쇼였는데 흔히 성우 김승준 씨같은 그런 미형 성우가 아닌데다가 톤이 일반인스러우면서도 또 잘생긴캐릭도 소화할거같은 목소리라 독특한인상인데 매력적이었다.

작화
혈육이 눈알이 작으면 백발백중 R18이랬는데 쇼야는 흰자위가 많아서 해당 안된건가ㅋㅋㅋ 캐릭은 평이했는데 작화가 유려해서 특히나 배경을 비롯 물속이나 수면 파동, 불꽃놀이까지 섬세하고 환상적이어서 마침 직전에 본게 신카이 마코토여서 혹시나 했는데 들어본 기억은 없고 아줌마들끼리 한다는 쿄애니가 작화퀄 좋다는 얘길 주워들었는데 쿄애니였다. 눈호강 제대로.

번역 -이선희
매우 대단히 훌륭하다. 일단 직역체가 하나도 없다. 야바이나 키모이를 일률적으로 번역한게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번역했고, 오글거리다가 표준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매끄럽게 번역했고. 그 밖에 의역이 빅쿠리시타 간떨어질뻔했다 등으로 좀 더 한국어 대사답게 번역했어서 이 번역대본 가지고 한국어 더빙판이 보고싶을 정도로 한국어본만으로 어색함없이 잘했다.

기타
일본수화에 관해 볼 기회가 적었는데 수화의 사랑과 미국수화의 손짓이 다른것으로 수화도 나라마다 다른건 알았다. 니시미야가 수화할때 일본 가나랑 형태 똑같이 손짓하기에 역시 한국 수화랑 다르구나 했는데 '같이'할때 떨어진 엄지끼리 모으는 손짓이 내가 알고 있던 수화랑 같길래 검색해봤더니, 일제강점기때 수화가 들어와서 60%는 같단다. 그러면서 후천적으로 한국어를 배운사람이 수화를 배우는 건 모국어를 기반으로한 한국어수화고, 선천적으로 수화부터 배운사람은 한국어문법과 상관없는 한국수화를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다르다고. 한국수화는 한국어의 문과 관계없으니 별개의 언어로 봐야한다는 지론까지. 여지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담론을 알게됐다. 문명의 발달로 장애인도 학습권이 생기고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게 됐지만 그들의 인권은 얼마나 상승했을까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만화에서처럼 일반인 속에 한 구성원으로 살아야하는데 학교에서조차 특수반, 특수학교로 밀려나고 한국의 경우 장애인은 버스조차 타기 힘들다. 장애인도 빈자도 한국 도시에서 지워진 존재라, 외국인들은 길거리에 장애인들이 없다고 놀래곤한다. 이 만화에 백프로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더불어사는 사회에 지향적인 컨텐츠가 사회인식제고에 기여하는 바 한국에서도 이런 기획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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