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님



 금혼이 끝났다.

 카츠라 캐릭터가 '츠라가 아니라, 카츠라다'만 모은 영상 때문에 카츠라만 대략 알고 있던 정도였는데, 우연히 금혼부터 보게됐다. 19세치고(아마 우리나라 기준일듯) 잔인하지 않고 선정적이진 않지만 패러디나 유머코드가 성인대상일 만한 애니. 그 참을 수 없는 천박함과 쩌는 패러디 보는맛에 보는듯. 

  중반부터 일본 정서 특유의 눈물나는 동료애로 범벅된 신파극은 좀 고질적이다 싶었다. 그리고 난 금혼으로 처음봐서 금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찌질한 주인공보다 능력자 주인공을 선호함- 갑작스런 킨토키가 악랄한 본색을 드러내며 모든 악의 화신으로 급전락하는 데에 대해 캐릭터 붕괴라고 생각한다. 그 똘똘한 캐릭터가 자기가 그동안 뭣때매 공들여 이미지를 쌓아놓았는데, 그렇게 쉽게 자신의 본색을 만인에 드러내는 것 하며, 대체자 컴플렉스 외엔 정교한 당위성도 뒷받침되지 않았거니와 긴토키를 저지시키는것 외에 제3의 타협점은 없었나 싶었다. 그럴려면 아마 데스노트급은 되야해서 안될거야. 어쨌든 주인공 살리는 것이 장르불문한 임무니까 에피용 캐릭터는 마땅히 희생하는게 타고난 숙명이기에 까라면 까야겠지. 

 웃고 즐기는 표면의 가벼움 말고도 꽤 괜찮은 대사도 많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숨겨진 묵직함도 놓치지 말고 본격 진지먹는 포스트.

 

 처음에 보면서 [은비까비의 옛날이야기]에서 손톱·발톱 아무데나 버렸다가 백년묵은 쥐가 손톱먹고 도령으로 둔갑해 본가에 돌아가 자기행세 하는 [자기를 도둑맞은 사람]편이 생각났다. 공부하던 3년동안 있었기 때문에 그 기간에 있었던 일을 맞히지 못하여 졸지에 사칭으로 몰려 쫓겨난다. 자기 부모님도 자식을 몰라보시고... 






  우리에게 은은 금에 가려져서 항상 2인자같은 위치에 있다. 그런 은(銀時:긴토키)이 주인공인 이 애니에서 금(金時:킨토키)이 나타났다. 긴토키가 자기집에 돌아왔는데 모두가 자길 몰라보고, 세상 사람들이 자기 대신 직모에다 금발에 모든 컴플렉스를 완벽히 극복한 킨토키를 연호하며 자기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은발머리의 긴토키의 영혼을 딴, 은혼이란 애니 제목도 은혼에서 금혼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편성표며 공식홈페이지도 [금혼]으로 송두리째 바뀐상태. 킨토키 성우는 평소 긴토키 성우인 스기타 토모카즈가 부러워하는 목소리라고 칭송하던 나카무라 유이치를 캐스팅했다.


 인간의 모든 컴플렉스를 극복한 완전체, 인조인간. 인간의 역할을 잠시나마 대체할 의도였지만, 대체를 넘어 그와 관계하는 모든 인간관계의 인심을 사 자기편으로 장악한다. 

 '모두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리더, 리더를 뛰어넘은 완전한 리더', '(은)빛을 집어삼키는 눈부신 금빛으로'

긴토키를 대체하기 위한 단 하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가 선택한 것은, 진짜 해결사 리더. 즉 긴토키란 존재를 이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제거시켜 대체물 아닌 기억의 원주인으로서 자리하는 것이었다.






 기억조작과 세뇌라는 극적 효과를 주지 않더라도, 주변사람들은 수완좋고 능력있는 킨토키가 인심을 사기 위한 행동들-집세 이상의 집세로 내고 남는돈으로 온천이나 가라든지, 골든벨을 울린다든지-은 충분히 타인의 환심을 사기 충분한 것들이었다. 주변인물의 마음을 잡는다는 것은 판세가 킨토키에 유리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진짜 긴토키에게 가짜 킨토키의 흉내나 내는 짝퉁취급을 가장 친한동료의 입에서 듣게됐으니.


 아무도 자신을 자신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자신이 진짜라고 외쳐도, 진실은 대세를 쟁취한 타인세력에 왜곡 되기도 한다. 사람 하나 매장하는거 일도 아니다. 그렇게 한 인간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존재하지 않는자의 외침은 간절하지만 집단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미친놈취급하며 낙인찍힌다. 이미 세상에 퍼진 인식이 그렇게 내가 아닌 것으로 정의가 된 상태라면, 동요하기 쉬운 인간은 자기자신 조차 그 진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십상이다. 내가 내 자신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실 허상이 아니었나. 사람 하나 미친놈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개인들에게는 집단적으로 인간의 행위들을 그들의 양심에 대한 폭력으로 인지하는 도덕률이 있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집단적 행동을 그 행위가 의미하는 참된 성격을 드러내기보다는 낭만적인 해석을 창안하여 불명확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이렇듯 인간의 집단적 행동의 위선성이 자기 정당화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행위 일반에 대한 도덕성에도 그 위선적 성격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인간 정신이 마주친 비극, 즉 인간의 집단적 생활이 개인적인 이상과는 일치할 수 없음을 상징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동정심과 정의가 집단으로서도 옮겨지지 않는다. 곧 개인이 가지고 있는 '희생'이라는 이타주의적 덕목은 집단에 대하여는 '충성심'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것은 집단의 도덕성을 말살시키는 결과를 낳고 집단의 이기심을 확대시킨다. 무리가 되어 하나의 집단을 이루게 되면 개인의 도덕성은 힘을 잃는다. 집단의 논리가 개인의 도석성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Reinhold Niebuhr -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1932)








인조인간의 사고 메커니즘으로 이해시킬 수 없는 것, 모방할 수 없는 감정은 뭘까. 



 관심을 끌기 위해 자살소동을 벌이는 여자. 설득하기 위해 옥상위로 올라간 금과 은. 어쩌다 여자는 진짜 옥상에서 떨어져버렸고, 긴토키는 망설이지 않고 추락하는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다. 타인에게는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고 의지만 앞선 행동일수 있지만,  은혼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될줄 뻔히 알면서도 뛰어드는 마음'임을 소구했다. 


 이런 생사가 걸린 상황은 만화속에서나 가능한, 드물게 진심 100% 의인-故김수현氏나 지하철 용감한 시민-같은 분만 가능한거지만.. 일상적으로는 모두가 안된다고 하는 일에 도전하거나, 타인에 휩쓸리지 않고 사람을 믿는것. 적지않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신념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는 것. 가끔씩 불가능 속에서 기적을 만든 사례들. 위험률이 높을 수록 불가능으로 수렴하는 것으로 판정하는 기계가 도출하기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 고차원 안드로이드는 헷지(Hedge) 하려나ㅋㅋ



 상습적으로 집세 밀리고, 감정노출이 다혈질인 긴토키와 달리 차분하고 여유있으며 능력있고 인심이 후한 킨토키. 자신의 정체를 아는 타마(인조인간)와의 1:1씬에서 벽밀키 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같은 기계치곤 꽤나 무디군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정비나 받아보지 그래?

-긴토키님은 여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인기가 없는거잖아? 그런점도 난 보완된 거라고

 아무리 구슬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데다, 이상한 소문까지 퍼뜨리고 다니니 나도 비장의 수를 쓰는 수 밖에. 

 (턱잡으며) 얌전히 날 따라. 너도 잘알거야. 나한테 맡기면 모든게 잘될 거란 걸.

-(오일 뱉음) 역시 당신은 폐품이군요.

거기서 비장의 수같은 정중한 표현이 아니라 저질드립이 나오지 않는 한 평생 긴토키님이 될 수 없습니다.


 좋은것과 이상적인 매뉴얼로 프로세싱된 킨토키의 사고에선 불필요한 가치없는 말, 인간에겐 감정의 표현이자 웃음이 될 수도 있다. 사소한 말장난외에도 무의미한 인터넷, TV, 게임으로 시간죽이기 등 기본적으론 언제나 선(善)을 추구하지만 무가치한 것들에 필요이상으로 시간과 물질을 투입하는 인간의 낭비는 타인에겐 이해할수 없는 영역이다.






-댁이야 말로 괜찮은거야? 적을 숨겨주다니.

-니가 타마를 부쉈다고? 자기가 부수고 자기가 고치러 오는 녀석이 어디있어?

 난 인간의 말이나 마음은 곧 잘 흔들리기 쉽다는 걸 알고있지. 기계의 영혼은 철보다 무겁거든. 

 어쩔셈이야. 어찌됐든 내가 만든 폐품이 이 구역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인데.

 네가 상대할 사람은 과거의 동료 너에게 있어 최강이자 최악인 적이겠지.

 그걸 다 계산하고 친 덫이야. 넌 만에 하나라도 승산이 없다고.

-계산상으론 그렇지. 그래도 인간이란 동물과 짐승은 계산을 잘 못하거든.

-인간의 마음은 계산할 수 없다는 거냐?

-무모, 무대책, 무식 말하자면 끝이 없군. 

 하지만 녀석에게 한가지 약점이 있다면 그걸지도 몰라. 

 완벽한 녀석이기에 더더욱 예측할 수 없는 것. 계산에서 벗어난 존재, 사카타 긴토키. 너라는 바보다. 

-바보에 한명 더 추가.

-그러니까 긴토키, 銀이란 글자, Zero로 만들지 마라. 킨토키를 막을 수 있는건 긴토키 밖에 없어.


스스로 예측결과를 도출하고 판단을 내리는 인공지능 인조인간에게 순발력과 임기응변은 쥐약이다. 그치만 투입만큼 산출결과를 해낼 줄 알고, 피드백도 충실히 낼 수 있다. 바이러스나 불량품의 비극만 없다면. 프로그래밍한 대로 착실히 해내는 로봇에 비해 인간은 게으르고, 순간의 임기응변으로 만회하고자 하는 불성실한 면도 지녔다. 평소에 꾸준히 해놨더라면 문제없었을 시험이나 프로젝트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부랴부랴 벼락치기로 그 순간 만큼은 평소의 몇배의 체력을 소진하면서 목적달성에 매진한다. 


 한편 예측불가능한 인간이 하는 가장 어려운게 사랑. 이유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이유없이 누군가에 싫증낸다. 서로를 모른채 결혼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이혼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상대를 향한 감정이 가변적이며 애정이 증오와 결합돼 사랑할수록 복합적인 감정으로 커져나가 어떤 특정한 말로 단칼에 정의내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어려운 문제. 사랑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고, 사랑이란 것이 촉발하는 산업효과만해도 상당하리만큼 인간생활에 필수불가결한 난제지만, 딱히 해법도 없다. 그렇기에 더욱 알 수 없는 변수들이 속출한다.






 긴토키는 고민한다.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올 의욕떨어졌다고.


자신의 자리를 가로채간 것 치곤 그 이상으로 잘하고 있으니. 능력있고, 동료에 잘하고. 

주변사람들이 아는 과거는 자신의 것이니 거짓이라해도 지금의 그는 진짜니까.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인 리더라면, 가짜를 부숴서 잘 돌아가고 있는 현재를 깨뜨리면서까지 돌아갈 의미가 있는걸까.


 그러나 자신을 믿어준 타마(인조인간)와 사다하루(개)를 위해 되찾을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충분히 근사한 현재의 인조인간 킨토키세상 대신 초라한 긴토키를 믿고 응원한 그 둘에게 초라한 세상을 보여줄게 두려워 혼자 도망친다는 건 할수 없다며.


 자신의 원래 위치를 훌륭히 대체한다. 굳이 안드로이드가 아니더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학교에 결석한다고 해서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자리를 대신해 새롭게 채용될테고 공석은 곧 메워진다. 인간 사회가 관료제를 택한 이후로 대체가능성으로 그 희소성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쉽게 생산하고 쉽게 버려질거라고? 이미 인간조차 소모품취급하는 세상에 살고있다. 복제인간이면 몰라도 인조인간에는 해당없음을 단언한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등장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쉽게 동정이 가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도 대체가능성을 초월한 그들과의 경쟁을 고민하는게 급선무인데도. 지금도 인간을 위해 바쳐지는 동물걱정이면 모를까.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제3세계로 떠난 기업들, 내수 빨아먹는 나머지 기업이 잔존하며 매력적인 수요노동력은 제한된 상태. 대체 불가능한 희소 인력이 되기위해 스펙상한선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 유행처럼 명퇴바람이 불거나 관행처럼 부당한 인사발령 권고사직으로 쉽게 짤리고, 그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가 대체된들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지 않고는 수요에 따라 존재가치가 가변적으로 변화한다. 

 세상사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자기만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자리로 만든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인걸 체득하면서, 인간조차 인스턴트의 대상이 돼버린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관료제는 위계적으로 구성된 일종의 조직이다. 관료제는 일을 조직하는 방법이 예전과 완전히 다른데, 그것은 관료제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효율성을 높여주는 형식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화된 규칙과 규정은 그 담당자로 하여금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선책을 취하도록 유도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주어진 업무는 여러부분으로 나누어지며, 각 부서가 주어진 업무의 정해진 부분을 책임진다. 각 부서의 담당자들은 이미 정해진 규칙과 규정을 따르면서 그들이 맏은 부분의 업무를 처리한다. 각각의 담당자들이 순서에 따라 요구된 부분을 처리할 때, 전체 업무는 완결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면서, 관료제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최적의 수단이었음이 확인될 것을 도구로 사용한다.


 형식합리성이란 무엇인가? 베버에 의하면, 형식합리성이란 인간이 주어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을 추구하는 것이 규칙과 규정 그리고 더 큰 사회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개인에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형식적으로 합리화된 체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거나 해야 한다.


 첫째, 베버는 관료제를 과다한 양의 문서가 필요한 많은 업무들을 처리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보았다. 둘째, 관료제는 계산가능성, 즉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수량화할 것을 강조한다. 셋째, 확고히 정립된 규칙과 규정으로 인해 관료제는 고도로 예측가능한 방법으로 운영된다. 마지막으로, 관료제는 인간의 판단을 규칙, 규제, 구조가 요구하는 지시로 대체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통제를 강조한다.


George Ritzer -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 (1993)






-정말이지 물러터졌구만. 긴토키 이게 니가 되찾은 현실이다. 

 봐라, 적하나 깔끔하게 끊어내지 못하는 한심한 동료들.  

 봐라, 혼자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기자신을.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불완전체는 언젠가 무너지겠지. 

-니 말대로야. 난 혼자선 아무것도 못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결점을 가진 결점투성이들 뿐이야.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 하고 서로를 받쳐주지.

 틀림없는 완전무적 주인공이야.

 맘에 안들면 언제든 다시 와. 언제든 상대해주지. 

 잘있어라, 불완전한 프라모델.



과연 이 세상의 주인이 인간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이렇게 변수에 결점투성이인 인간이. 



 안드로이드는 애초에 결점따위를 삽입하는 자체가 불문율이다. 그들에게 결점이란건 곧 불량품을 의미하기 때문. 하지만 인간에겐 그게 인간미가 된다. 사람을 흉내된 안드로이드에 인간이 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먼 미래에 대한 공상과학류 영화나 만화를 통해서 종종 접할 때면, 자신이 없다. 인간이 제조했다 한들, 그 제조한 인간도 노화를 피할 수 없고 결국 진화를 거듭하는 안드로이드에 추월당할 날이 올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기계때문에 노동력 수요가 대폭 감소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나 생업을 잃은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기계파괴 운동)을 벌였다. 인간이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직업중 농업, 제조업에서 19세기에 비해 상당부분은 기계화되었고, 먼 훗날 서비스업까지 소화할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하는 수준이라면 과연 인간의 경쟁력은 인간미에 기댈 수 있을까 싶다.


 무엇이 불완전이고 무엇이 완전일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같은 인간을 서로가 속이고 사기가 판을 치는 세상,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편법과 불법을 불사하고 권력위에 군림하려 드는 초월적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세상속에서도 잃지 않는 잡초같은 희망? 






분명 은에게도 은만의 빛이 있건만 우리는 금빛에만 열광했다. 

but you know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