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님


▲창렬경제, 창렬푸드 하더니 신조어 기사까지 나온 창렬시리즈



김창렬의 포장마차와 돈값


겉에는 번지르르하고 속은 부실한 즉석요리식품의 모델로 이름을 빌려줬던 김창렬. (자세히보기) 연예인이 이름을 빌려줬다가 품질문제로 논란을 빚었던건 비단 김창렬 뿐만 아니라, 정형돈의 돈까스, 김수미의 간장게장 등 여러차례 있어왔다. 나 역시 자신의 이름을 팔고 돈을 받는만큼 돈과 제품에 대한 책임감을 등가교환한다고 생각한다. CF로 기용돼 선전하는 행위 역시. 그래서 사업주의 부도덕 행위로 파문을 일었던 남양사태를 겪고도 프렌치카페 커피믹스 광고를 끝까지 유지한 김태희와 재계약까지한 이정재를 보고 내안에선 비호감. 본인의 잘못이든 아니든 제품의 얼굴을 했으면 돈값을 해야지.



창렬이 상징하는 것


아무튼 김창렬의 포장마차는 욕을 먹다가 2014년 하반기쯤 정신차렸다며 새롭게 호평을 받기 시작한다. (자세히보기)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버렸... 이미 욕을 먹을대로 먹다가, 식품업체들의 과장·허위광고에 불만과 염증을 느껴오던 네티즌들이 아예 창렬이 과대포장, 과장광고를 지칭하는 비하의 의미로 주요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쓰기 시작한 것.


발단이 된 상품에 대해서는 김창렬이 관여했든 하지 않았든 여부를 떠나 도의적으로 감수해야한다. 근데 김밥 창렬, 샌드위치 창렬…여기에 김창렬이 관계한거 있나? 하등 상관없는 것들에 까지 비난을 위한 게시물에 그의 이름을 사용하는 의도는 너무 뻔하다. 남의 이름으로 비아냥대고 낄낄거리려는 저열한 의도.



뷁과 창렬


비난을 상징하는 의미에 자기 이름이 쓰인다면 당사자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거지. 벌써 문희준 사건을 잊었나.. 나는 문희준이 처음 락한다고 오이 3개먹는다고, 레드제플린도 모른다고 악의적으로 편집한 게시글 보며 악플을 달진 않았지만, 그 게시물을 보며 웃었고, 그의 노래가사 중 'Break'를 조롱하기 위한 '뷁'정도는 다들하니까 유행처럼 따라 쓰곤했다. 명백히 문희준을 조롱하기 위한 짤에도 '뷁ㅋㅋㅋ'이정도 댓글을 달았던 것같다. 그 때는 나도 어렸고, 한창 낄낄대던 뭣모르던 시절이라 내가 악의적 짜깁기글에 휩쓸리면서 '왜 문희준을 조롱하나', '범죄자도 아닌데 너무한다.', '그 의도가 아니라 와전된거다' 이런 옹호글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키보드 배틀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어휴 역시 빠는 못말려' 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했었다. 

그렇게 문희준은 조롱속에서 신음해갔다. 온라인에서만 성행하니까 오프라인에서의 그의 삶과는 별개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문희준이 방송에서 처음 언급했을 땐 충격이었다. 상상플러스에서 입을 뗐을 땐 아주 조심스럽고 조심스럽게 오해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탓을 하더라. 놀린건 네티즌인데 내가 문희준의 자료를 퍼나르거나 게시하거나 비하적 악플은 달지 않았지만 같이 웃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아무 제지없이 동조했다는 이유로, 난 문희준에게 일말의 부채의식을 느꼈다. 뒤늦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일에 온 네티즌들이 조롱을 위한 장난감처럼 그를 여겼다는 것에 아마 죄책감을 느꼈을테고 어마어마한 악플세례와 명예훼손성 글과 짤방이 넘쳐났음에도 법적대응 하나 하지않고 모든걸 포용한 문희준을 보살로만 추대하고 까임방지권이니 뭐니하며 치켜세워줬지만, 더 중요한건 제2의 문희준같은 조롱의 희생양을 만들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점차 창렬을 조롱과 비하, 비난의 의미로 생각없이 쓰는 게시글이 늘고 있다. 그 중에는 문희준 사건을 알지 못하는 꼬꼬마 초중고딩도 있겠지만, 생각이 있는 스무살 넘은 성인이라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이름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붙는다고 하자, 얼마나 치욕스러운가. "갑돌이가 보고서를 이따위로 작성하다니 실망이군. 앞으로 개판인건 갑돌이라고 해야겠네. 갑돌 레포트, 갑돌 과제, 갑돌처리, 갑돌스럽다, 갑돌하고있네" 주변 동료나 친구 몇명이 장난조로 얘기해도 부들부들 할 거다. 온동네 네티즌들이 달려들어 심심풀이 땅콩으로 자기 이름으로 놀려댄다? 감당이 될까. 사고 많이 친 김창렬이지만 사회적인 체면이 있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한 가장으로, 한아이의 아버지다.

 조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해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동조했을 때 상처받는 사람은 없는지 역지 사지 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