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님


어느 한 문화의 부산물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같은 문화고 어쩌다가 잭팟이 터지면 그것은 블루오션이 된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을 때 국가에서 지원한 [원더풀 데이즈]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산업들, 또는 헐리우드의 대항마 심형래를 기억해 보라) 

모든 가치를 경제적으로만 환산하는 김치맨 특유의 종족 특성은 한국형 '열정 페이 계산법'(Passion Calculation Method)을 만들어낸다

 

열정이 있다+재능이 있다+재주가 있다 = 돈을 조금만 줘도 된다

 

Ex) 너는 원래 그림을 잘 그리니까 공짜로 초상화를 그려 줘라.

너는 어차피 공연을 하고 싶어 안달났으니까 공짜로 공연해라

너는 경력도 없으니깐 경력도 쌓을 겸 내 밑에서 공짜로 엔지니어를 해라

-잡지「칼방귀」 여름호, 김간지 2012.05.25 



레알...
전 업계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흔한 고용주의 업계의식이지만
불나방처럼 꿈을 쫓는 분야라면 특히 심각하다
영화계, 애니계, 패션계, 방송계 등등





Q) 그러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가장 큰 불만은 무엇인지.


A) 가장 큰 불만이요? 다요. (웃음) 첫째로 단가. 그런데 그것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애니메이터가 자신의 노동만큼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일은 고되고 힘들어요. 

근데 다들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정말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본 정부 통계상으로는 절대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있고… 일을 좇자니 연애할 시간도 없고, 결혼도 못하고 40, 50 늙어만 가고… 

그것을 모두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네가 선택한 거니까 감수하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 큰 리스크에요 

난폭하게 말하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여기에만 매달려라라는 식의 이유. 

‘네가 좋아서 들어왔으니까’는 정말 무책임한 말이에요. 

그거 되게 웃기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들어와서 열심히 하는데, 그 사람들은 어렵게 살아가야 되고 

삼성, 토요타에 입사해서 좋아하지 않지만 일이니까 하는 사람들은 잘살아요. 

이게 바른 거에요? 그건 아니라는 거죠. 

가장 불만이라면 그런 거죠… 즉, 같이 일하는 저뿐만이 아닌 동료들, 현장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분명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식의 태도나 사고, 행동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답답하죠.


-웹진「프리카」,매드하우스 제작데스크의 김현태씨를 만나다 2012.01.23


열정페이 계산법의 함의와 맥락을 같이하는 책을 소개한다. 
열정페이 계산법의 출처로 잘못 알려져 있을만큼 이와 관련한 내용이 본격적으로 서술돼 있고, 
문체도 어렵지않고 가독성 높은편.


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착취한다. 꿈은 자본주의가 청춘에 깔아 놓은 가장 잔인한 덫이다. -엄기호 (5p)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틀어막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최태섭 (15p)

‘열정’, ‘젊음’, ‘도전’과 같은 이 행사를 수식하는 단어들의 용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단어들은 행사를 통해 얌전히 ‘길들여’진다. 열정은 넘치지 않아야 하고, 도전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젊음은 무모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열정의 대상으로 허락되는 것은 더 이상 세계나, 사회, 혹은 타인이 아니다.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심화되는 ‘자기 혹사’의 몸짓들은 ‘치열하게 살지만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개인들을 양산한다. (25p)

열정은 제도화되었다. 체제는 열정의 분출을 요구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열정을 ‘유사 도덕’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성공을 거두었다. (46p)

열정은 어느덧 착취의 언어가 되었다. 이 거친 황소의 체제 안에서 훌륭히 길들여졌다.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청년’들이 새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런 가슴 속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지자.”는 말은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날까지 충실하게 살라는 격언이 되었다. (47p)

“이거 실화예요. 회사 분위기 안 좋고, 펀딩 안 되고, 뭐 그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가방 하나 맨 애가 문을 열더니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영화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돈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외치더라고요. 근데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그런 일에 감동받지 않아요. 그 애를 쳐다보는 스태프들의 심경은, ‘저런 녀석들 때문에 내가 돈도 못 받고...’ 였죠. 영화판에 애들은 자꾸 들어와요. 정작 끝까지 가는 사람은 잘 없는데, 계속 유입이 돼요.” (83p)

열정은 본래 대중의 것이었다. 오타쿠와 마니아들은 자발적으로 모였고, 자발적으로 배웠으며, 자발적으로 창작했다. ‘문화 산업’과 ‘벤처 기업’의 등장은 상황을 바꿔 놓았다. 취미가 일로, 일이 취미로 변했다. 열정이 산업의 내부로, 그리고 노동으로 유입됐다. 자본주의는 ‘열정’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발견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이전보다 더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구했다. 열악한 조건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혹여 불만이라도 토로하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에 대하여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186p)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한윤형.최태섭.김정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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